강이래라고 있었어요 지가 축제날 9시50분 까지 만나서 같이 가기로 해놓고선 지 나챙기기 귀찮으니깐 버리고 지 친구랑 대강당 온거있죠?쓰래기죠
강이래라고 있었어요 지가 축제날 9시50분 까지 만나서 같이 가기로 해놓고선 지 나챙기기 귀찮으니깐 버리고 지 친구랑 대강당 온거있죠?쓰래기죠
엄마는 꽉 막혔어요.. 그래서 엄마 위로를 들어도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요. 마카님들의 댓글은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맘 잘 알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토요일 아침이에요 좋은꿈 꾸셨나요? 많이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고 물 많이 드세요 토닥토닥 쓰담쓰담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라요 화이팅:)
친구에 관한 기억 20살쯤 그 친구와 여행을 갔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이 름모를 바닷가에 갔다. 펜션에 들어서니 오래된 고목처 럼 직원이 있었고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한 바다에 추위가 지 보태어 무서운 인상마저 연상됐다. 나는 밤을 새워 기 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먹을 것을 가위바위보로 해 결했다. 4명 중에 그 아이와 다른 아이가 졌고, 때문에 버 스를 타고 마트에 갔다. 그 아이는 신경질이 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을 조롱하는 아이다. 나는 여행에 서 그 친구를 위해 많은 것을 배려했다고 생각해서 그 아 이의 퉁명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무렵의 친구 는 내게 한가지 실수를 더 했다. k라는 친구와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돈을 빌려야 한다고 k가 말하자 그아 이가 "걔 있잖아 돈 빌려주는 애"라고 말했던 것을 k 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나는 문자로 그 친구에게 따져 묻다 가 말하지 못하겠는 고독감이 나 자신을 지배해 가는 것 을 느꼈다. 펜션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으니 누군가 현관 문을 발로 찼다. 그 아이였다. 예민한 나에게 현관문을 발 로 차는 그 소리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감정에 미숙한 어린아이 같던 나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온 그 아이에게 ***아오지 말라며 통보한 후 근처의 pc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곳 을 떠나버렸다.
저를 정말 사랑해주고 저도 그사람을 정말 사랑해요 저는 16살이고 그사람은 18살인데 저도, 그사람도 서로 원해서 ***를 했어요. 이제와서 드는생각인데 그사람을 엄청 믿고 있는데 저랑 ***한 걸 제 친구들이나 아무한테나 얘기하고 다니면 어떡하죠...?
카테고리에 성희롱이 추가되있네요 오랜만에 와보았는데 제 얘기를 쓰라고 떡하니 두신 거 같아서 와닿네요..
친구에 관한 기억 내가 말을 잃어버린 것은 정확히 18살로 기억한다. 풍경이 변하기 시작함을 느꼈다. 길어지는 쉬는 시간 이 그러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엎드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때 그 아이는 내 옆에 종종 찾아 와 몇 마디의 말을 건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감 사함을 느꼈고, 그 마음은 성인까지 이어졌다. 한 명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친구들은 너 요즘 왜 그러 냐며 묻다가, 시간이 지나니 얘 원래 이렇다며 나 대신 답변을 했다. 손쉽게 잊히는 나와 인간관계의 연결에 서 이해타산적인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때이다. 나는 말 을 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종종 누군가 "왜 그렇게 변했 니" 물어볼 때면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듯 수많은 상념 들이 떠오르고, 나는 감정을 신경 쓰며 머뭇거리다가 답 변을 놓치곤 했다. 나는 퇴화해갔다. 완전한 타인이 된 나의 오래된 친구들은 얘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농담으로 삼고 그랬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듣고 보 기를 시작했고, 타인의 결점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이 어 린 나에게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와 길을 걸으며 언제쯤 말했다. 네가 그때 했던 말이 생 각에 남았다고, 그 아이가 언제 나에게 다가와 다른 친구 를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그건 너에게 잘해주니 너만 느 끼는 감정이고 실제로 그 친구의 행동은 좋지 않다고 말 했다. 타인을 관망하는 자리에 있는 내가 보는 당연한 것 을 그 아이는 놀랬었다 말하며 기억을 꺼냈다.
친구에 관한 기억 18살 이후로 성격이 변했다. 누구나 자기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어린 내가 꿈꾸 던 나의 자아상은 괴짜 같은 할아***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웃긴 아이였다. 자의식이라는 것이 없어 보이는 아 이였다. 나는 경박하고 관심받기를 좋아했으며 수업 시 간에는 매번 불려나가 맞는 일이 잦았다.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은 너의 하루가 궁금하다며 일기를 써오라고 했다. 나는 반년 가까이 일기를 쓰며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후에도 혼자 남아 검사에 합격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그렇듯 뒷자리를 선호했으며 시시 콜콜한 농담을 해서 주의를 받던. 나는 내가 옳지 못하다 고 생각 했다. 언제인가 일기장을 매번 고쳐 쓰다 머리를 한대 맞고, 쓴소리를 듣고 나서야 집으로 갈 때 학교 앞 문구점 사장님은 나를 불러 세워 먹을 것을 쥐여주며 왜 그렇게 우울하냐고 물었다. 그 무렵의 나는 어떤 소설 속 의 주인공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광대의 행세를 하며 나 자신마저 인지하지 못하는 무엇을 가리고 있었다고 생 각이 된다.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내 책상에 모여들어 농담을 꺼내고 나는 특유의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것이 타인의 관심을 받는, 나의 유일한 인정 수단이었다. 어떤 날에는 반 아이들이 모여 내가 했던 말들을 이야기 를 하며 낄낄대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을 들으며 뿌듯해하였다. 수학여행을 갈 때면 내 옆자리에 앉겠다는 친구들이 많 았고, 그들이 사랑을 주는 만큼 잠들기 전에는 함께 있는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면서 애정을 키웠다. 어떤 날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치 않은 어떠한 한 문장이 마음에 떠올랐고 나는 그 이후로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세상혼자인거 싫은데 괴롭다
저 드디어4년만에 연락해봤어요 너무미워해봤고 그리워해봤는데 막상 연락하니깐 시원해요 저의 사춘기시절에 있던 그애가 너무그리웠어요사실 그땐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얘기할수있어요 아직 얘기 못했던게 있어요 너가 싫은게 아니고 그냥 말이 아니라 그냥 안아주길 바랬다고 심한말해서 미안하다고 사실 안싫어했다고 고마웠다고 많이 아팠지만 행복했다고 따뜻한 말한마디가 너무 고마웠다고 그동안 많이 생각했다고 옛날처럼 돌아가고싶지만 무섭다고 상처를 준사람이지만 상처를 치료해준 사람이기도 하다고 죽고싶었을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때 혼자인 나를 혼자가 아니게 만들어줘서 고맙고 남자친구이자 친구이자 동창이자 불편한사이 이젠 그냥 아는애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된것도 고맙다고 하고싶어
요즘엔 행복하다 라고 했는데 왜 마음은 슬픈걸까. 겉으로만 행복한거같다. 시험공부 때문에 너무나도 지쳤어. 그래서 마음이 많이 상처를 받았나 지치고 힘들고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 질까 대체 행복은 무엇일까.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려서 잠들기가 힘들어
천국이란 경찰쪽 분야는 영국인들이 맡고 요리쪽 분야는 이탈리아인들이 맡고 기술쪽 분야는 독일인들이 맡고 연애쪽 분야는 프랑스인들이 맡고 모든 관리와 통제분야를 스위스인들이 맡는 세상이며 지옥이란 경찰쪽 분야는 독일인들이 맡고 요리쪽 분야는 영국인들이 맡고 기술쪽 분야는 프랑스인들이 맡고 연애쪽 분야는 스위스인들이 맡고 모든 관리와 통제분야를 이탈리아인들이 맡는 세상이다
맨날 자다깨네 죽겧다
사람, 혹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때 다들 어떻게 견디는걸까 어떻게 감정을 추스릴까 난 이성을 잃을것만 같은데
이상형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잠 못 이루는 밤...오늘따라 쉽지 않던 하루였다
월요일에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는 무사히 잘 치르고 왔었어요. 기분이 싱숭생숭 하네요. 제가 그냥... 할머니랑 원래 되게 사이가 안좋았어요. 할머니께서 집안에 돈이 적은 스트레스를 저에게 푸셨기때문에 학창시절 급식비나 학비로 갈굼 많이 당했거든요. 그 외에도 어르신이다보니, 남녀차별도 심하셨구요. 그래서 자주 싸웠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프셨을때까지 할머니에게 큰 걱정이 되질 않았어요. 사람이 죽는다 라는것에 대한 어떤...감정도 없었구요. 근데 지금은 참 모르겠더라구요.. 이게..제가 할머니랑 사이가 안좋아서 할머니한테 잘 하지 않았던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데(저도 그만큼 힘들었으니까요..), 그냥.. 사람이 있던 자리에 그 사람이 없다는것이 그래요. 분명 며칠전까지만 해도 침대에 누워계셨구, 돌아가시기 전에는 저랑 이런저런 대화도 좀 나눈적도 있었고, 할머니가 아파하던 모습도 기억에 잘 남아있고,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 침대 다 그 자리에 그대로있는데 그 사람만 죽어서 그자리에 없다는게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할머니 방에 가보면 침대에 평소처럼 누워계실것같고 그런거에요. 사람이 죽는다는게 그 자리에 이제 없다는게 이런거구나.. 이런걸 느꼈네요. 사실 돌아가시기 전까지만해도 그런걸 몰랐어요 사람? 뭐 살다보면 죽기도 하고 그런거지 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거였구나...싶네요.. 장례를 치르는 첫날,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없어서 슬펐다기보다는 할머니를 잃어서 슬퍼하고 있는 친척들을 보면서 그 분위기에 눈물이 날 것 같은것은 있어도, 할머니가 돌아가신것이 슬프지는 않았어요. 둘째날, 힘들어서 집에 가고싶었어요. 제대로 누워서 잘 수 있는곳도 없고, 의자와 바닥은 딱딱하지 아침부터 새벽까지 그 긴 시간을 그냥 곧이곧대로 영정사진만 바라보며 기다려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할머니 영정사진을 봐도 별 감정도 안들었어요. 셋째날이 되어서야 눈물이 나더라고요. 셋째날이 묘에 묻어드리는 날인데, 묘 앞에서 하고싶은 말을 하라는거에요. 삼촌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안그래도 아파서 힘들었을텐데 내가 치료 계속 하자고 말해가지고 더 아프게 했던거 미안해. 가시는길은 그래도 편했으면 좋았는데 내 욕심때문에 더 아팠네. 적어도 80세까지는 살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 그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막 터지는거에요. 아..진짜 며칠전만해도 살아 움직이던 사람이 죽어서 진짜로 저 땅 깊숙이 묻혔구나. . 이젠 볼 수도 없고 이젠 진짜 죽은사람이구나.. 그렇게 보내드리고 집에왔는데,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이 너무 많아서 잊을 틈이 없어요. 냉장고를 열어도 할머니가 아프실때 건강하라고 드셨던 보양식들이나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들이 보이고, 안방에는 할머니 옷가지들이랑 침구가 있고,... 나중에 할머니 짐을 다 정리하고 시간이 오래오래 지나고 나면 잊혀지겠죠..? 아직은 돌아가신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그런건가봐요 친구들이 너무 마음아파할까봐 괜찮다고 웃고 그랬는데.. 그때는 괜찮았는데 글로 쓰려니까 갑자기 눈물나서 미칠거같아요..ㅋㅋㅋㅠㅠ 아...진짜 내일 친구만나기로 해서 얼굴 부으면 안되는데..ㅠ 이제 당분간 떡이랑 고구마도 못먹을거같아요.. 할머니가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시던건데.. 이씨...미운정도 미운정이라고...눈물이 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처음에 쓸때 그냥 마음이 좀 심란하고 허전해서 쓰기 시작한건데 눈물 바가지로 쏟고 끝낫어 대체ㅋㅋㅋㅋ 할머니, 저를 보며 자식 낳아도 하나도 쓸모없다 했지만 저랑은 그렇게 미운정 주고받으며 치받았을지 몰라도 그래도 당신 위해서 이렇게 눈물이 나네요.. 암튼 그랫다구요 아 좀 후련하다
애들이 나를 놀리면 내 반응이 재밌다고 놀린다. 글쎄 난 받아주긴 하지만 난 재밌는지 모르겠다. 맨날 들어서 약간 돌거 같기도 해. 내가 어디다가 힘든거 말하면 그거 잡아서 놀리드라 뭘 말하면 퍼지는건 순식간이네. 그냥 애들한테 장난감 같은 존재가 된걸까 힘드네... 안그래도 낮았던 자존감 더 낮아지고 힘들어지려고 해
지쳤고 나름 나대로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해야한다 의욕도 안나는데 그냥 질질 끌려가기밖에 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