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어떤 곳에서 마주친 사람이 생각난다. 눅눅한 색의 옷
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다. 억지로 지어보이는
웃음에서는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서 강했고 그래서 희미했다. 의식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올 초에는 등산을 자주 갔었는데 거의 매일 산에 올랐다.
음악을 들으며 걸었는데, 새소년의 파도로 기억한다. 요
즘은 약을 먹어서 약의 싸늘함에 도움을 받아 조금은 무
감각한 인간이 되었지만. 그때 산에 오르면서 불쑥 등장
하는 기억들 때문에 표정이 자주 상했다. 얼굴을 내비추
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넥 워머를 하고 모자까지 눌러쓰
고 장갑을 끼어 손떨림을 감추고.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서 어떠한 뗏목도 없이 표류하다 보면 운동을 해서인지
문득 좋은 생각들도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마저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서 내가 실수한 것들, 후회하는 지점에서
행동을 만회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걷다보면 뱀도 보고
멧돼지가 나무를 긁어서 영역표시를 해놓은 것도 보인다.
벼락에 맞아 껍질이 다 벗겨진 나무도 생각난다. 바닥에
나무의 껍질이 잘게 부서져서 동그랗게 놓여있었다. 한
겨울이었는데 그 나무는 참 추워보였다. 그래서 나와 닮
아보였다.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던 한 사람도 생각
난다. 몰래 다가가서는 이름을 부르며 나 왔다고 속삭인
다던 그 사람은 지금은 잘 지내는지 알 수 없다. 그루터
기 나무도 생각나고 500ml의 삼다수도 생각난다. 그당
시의 나는 지금보다 더 예민했다. 온갖 정신병의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속
수무책으로, 때문에 창의적으로 아파했다. 등산길에 처
음 올랐을 때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는 것이 그렇
게 반가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 쪽 귀의 이어폰을 빼고
떨리는 동공을 가다듬고 무뚝뚝하게 주고받았지만 그 인
사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소중했다. 사람의 인
상에는 선입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왠지 인사를 안 받
아 줄것같은 사람은 항상 받아주지 않았다. 대부분 남성
이었다. 또 중년의 나이에 강아지 한마리 없이 홀로 등산
하거나 산책하는 여성은 왠지 모를 쓸쓸함과 특유의 색깔
이 묻어났다. 도심 근처의 시골, 재미있어 보일법한 일이
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낙엽이나 평평한 산책로의
끝이나, 내 시선이 위치한 바닥의 보도블럭 따위를 보면
서 나만의 상념에 잠기곤 했다. 산책로에 있는 공중 화장
실에 들어서면 그 좁은 네모난 공간 안에서 마음을 풀어
놓고 턱을 괴면서 문짝에 붙은 거울로 쌍커플이 없고 길
게 찢어진 눈과 그밖의 나의 얼굴을 한참이나 보며 생각
하다가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존재의 희
미함을, 후 불면 꺼질것같던 그 생기없는 표정을, 느끼곤
했다. 심장 하나가 목의 중간에 걸려 소리를 지르고 싶은
날에는 동전 노래방에 가서 얼마 없는 인디음악을 찾아내
서는 가사를 곱***으며 부르고 과몰입 하여 울음도 자주
터트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욕조에 들어가 찬물
을 틀고 가슴에 샤워기를 가져다대고 움크려 앉아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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