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한동안 자살을 그려왔지만
한 영상을 보고 그런생각이 싹 사라졌다.
교통사고로 죽은 10살아이의 현장다큐였다.
영상속 그의 가족들은 ***듯이 오열하고 괴로워했다.
그걸 본 나도 목이 메여 바라보는것마저 고통스러웠다.
원치 않는 죽음을 그 어린아이는 당했는데
난
원하는 죽음을 스스로 집행하기가 조금 웃기고
내가 가진 슬픔과 고민은 그들의 비하면 택도 없구나,
그냥 자살한다는것 자체가 참 가냘프구나 싶어
그후로 자살을 그리지 않았다.
처음에 내 슬픔과 고통을 타인과 견주어 측정한다는것이 참 화가났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당연히 느끼는 감정도 다를텐데
부모님은
어릴적주터 내 고민을 토로하면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이들을 언급해 내가 찍소리 못하게했다.
사실상 난 내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은적이 제대로 없다.
우리가족들은 내가 말하려하면 맨날 휴대폰만 보고 내 눈을 바라*** 않는다.
여지껏 살면서 날 진심으로 대해준적이 없다.
난 오글거리는 말들은 싫어하지만
제감정을 솔직히 읊은 말들은 사랑한다.
없는말 하기도 싫고 과장도 하기 싫고 난 그저 있는 그대로 내 맘속을 토로하는게 내 스스로 장점이라 생각했다.
난 늘 이래왔는데 아무도 날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서.
말이 그리 긴것도 아닌데.짧고 간결했을뿐인데 날 쳐다*** 않아서 난 많이 서러웠다.
가족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는건 가장 슬픈일이다.
이제야 뭐 익숙해졌지만 어릴때 난 늘 그렇게 자라왔다.
난 어릴적에 지능이 굉장히 딸렸다.
늘 남들한테 퍼주기만 하고 당하기만 하는 동네***처럼.
항상 실실거리며 웃고 무엇이든 다 빌려주고,다 들어주는 ***.
초등학교 저학년때 난 친구가 없었다.
그냥 왕따라 해야 더 맞겠지.
우리가족중 내가 왕따였단 사실을 한명이라도 알까?
엄마는 다툼중에 “너가 그러니깐 따돌림당하지 “라며 다그쳤지만 심장은 찢어지는것같았다.
현장학습을 갈때면 내 옆자린 아무도 없었다.
얘들 장난거리나 받아주는 장난감이라 해야할까
가끔씩 내게 관심주는 친구들 몇으로 겨우겨우 학교생활을 보냈는데.
늘 밥도 혼자 먹고 집을 오든 가든 늘 혼자였거든.
“핑계를 되면 안되지만~이런말 해선 안되지만~”
이라 시작한 대화는 결국 적막한 분위기만 만들고 해결되지 않더라.
나 정말 핑계되면 안되지만.
어릴적 평균얘들에 비해 모든게 뒤쳐진 내 지능과 소심한 성격은 본래 후천적이었을까 아님 선천적이었을까?
그럼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 앞에 언니도 사실 나와 같은 길을 걸었다 믿어
우리 너무 커버렸잖아 이젠
부모 탓 하면 안되는데 지금은 엄마랑 아빠가 내게 바라는게 너무 많잖아.
내 삶이 온전히 결정되는 시기에 그들은 날 외면했는데
이제와서 헤아려달라고?성과를 만들어 바쳐야한다고?
가족이란 단어처럼 멋있고 감동스런 말로 포장된 단어가 있을까
다들 가족얘기하면 울먹거리고 못한것들만 생각나 미안해지잖아.
난 그게 왜이리 가식같고 모순같던지.
순간적인 감동심리를 자극해 울음을 보이면 효심과 가족애가 넘쳐흐르는것마냥 훌쩍거리는게 참 싫어 난.
너희들은 그 순간에 넘어가 슬프고 깨달았는지도 모르지만
내 상처는 아주 깊숙히 뿌리내려 은둔하고있어.
그래 내가 가족때문에 힘든건 아니다.
그냥 내 성격때문에,못난 내 자신때문에
죽고싶지.
잠깐은 괜찮다가도 때가 되면 힘들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내게,아니 모두가.
난 새벽에 곰곰히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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