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저는 정말 괜찮아진 걸까요?
몇년째 연초엔 괜찮았다가 점점 안 좋은 상황들이 겹치면서 조울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올해 고3인데,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너무 한심해요 제 자신이. 그러면서도 작년까지 힘들었던 것들에서 벗어나 약간 꿈꾸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계속해서 들어요 약먹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어도 가슴 부근이 아프지 않다는 것도 좋고 공부하다가 문득 울컥하는 것도 없어져서 좋아요. 이제 제게 남은 정신병은 환청밖에 없어요.
작년엔 계속해서 강한 자살충동이 들었고 옥상에도 여러 번 올라갔지만 그냥 내려온 내가 한심했어요. 자해도 했고 매일밤 가위에 눌리니 잠은 늘 부족했고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으며(환청은 들린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당연히 학업에도 영향을 끼쳐 1학년 내신 2등급에서 4등급까지 내려갔어요. 급식냄새만 맡아도 토가 쏠려서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고 밥을 먹을 수도 없었어요. 가장 한심하고 비참했던 건 위로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제가 친구들에게 정신병과 같은 저 증세들을 말할 순 없으니 밥을 못먹는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위염이라고 한다던가 토했다고 한다던가.
초6때는 아빠가 엄마를 때렸어요. 저는 옆방에서 무슨 소리인지 짐작도 못하고 퍽퍽 소리와 엄마의 울음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빠는 제곁에 누워있었고 멍투성이가 된 엄마는 울며 사람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놓냐며 울었어요. 엄마는 하루동안 잠적한 뒤 이혼소송을 위해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입술까지 까서 그 안쪽에 든 시커먼 멍을 보여줬어요. 어릴 적 아빠가 없었던, 그리고 외할머니조차 유부남과 사귀느라 신경써주지 못했던(그 유부남과 차별대우를 당했던) 우리 엄마는 엄마의 막내 이모부, 그러니까 이모할아***를 서울로 불러 도움을 청했고 그분들은 아마 저에게 증인을 요청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담담한 척 모든 절차를 지켜보던 저는 옆방으로 도망가서 울었고 엄마는 우는 저를 보고 이혼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 당신이 아빠 없는 설움을 아셨으니까요. 외할아***란 작자도 사실 할머니 ***가슴이 함몰되도록 때린 사람입니다. 무서웠던 건 초등학교 3학년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산 사이에 그런일이 또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문득 생각나는, 주말에 혼자 왔다 간 부은 엄마 얼굴.
중2때는 엄마랑 아빠 카드 내역을 보다가 아빠가 안마업소에 다녔다는 걸 알았어요. 아빠는 술먹고 저에게 마담이란 사람을 전화 바꿔주려 한 적도 있어요.
중3때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았어요. 아빠가 지방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 지방의 유부녀와 카톡한 걸 봤어요. 역겨웠어요.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어요. 애써 찾은 평화가 좋았어요. 아빠한테 돌려서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여자와 작년 6월쯤까지 연락했습니다.
이 일로 인한 최근의 일은 아빠가 바람피운 사실을 일기장에 적었고 어떤 기회에 엄마가 제 일기장을 보시고는 아빠에게 의부증 아닌 의부증이 생겼고 제가 아빠의 외도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빠는 저에게 너희 엄마가 나 바람핀다고 일도 못가게 한다며 비웃어요. ***같이 제 탓을 했습니다. 일기같은거 쓰지 말걸, 하구요.
고1때는 아빠가 회사사람을 데려와서 술을 잔뜩 먹고는 취해서 제 가슴을 만졌어요. 제 앞에서 옷을 다 벗기도 했어요. 저는 더러운 사람입니다.
고2때는 지하철에서 하복 교복을 입고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앉아있는 아저씨 두 명이 제 가슴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제가 내릴 때까지. 옮길 자리는 없었고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었습니다. 그무렵 엄마의 하소연(10살까지 외할머니랑 살았는데 할머니의 하소연까지 하면 미취학아동인 7살 즈음부터 들어왔던.)을 견디기 힘들어진 저는 처음으로 거부하기 시작했고 묵은 감정을 풀 데가 없어진 엄마는 저에게 심하게 막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말부터 아빠가 지방으로 출근해서 자주 안 온 중학교 2학년때까지 부모님은 번갈아 술을 드시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당시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털어놨더니 아빠는 제 성격 탓을 하시며 몇 년을 그러는 건 니 탓이라고 하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엄마도 아빠도 새벽에 술집에서 술 드시고 노셨고 마침 올라오신 외할머니는 아픈 다리로 놀러다니는 엄마를 찾***니며 울었어요. 부부싸움도 잦았어요.
뭐 그런 구질구질한 일들이 있었고 제가 상처받은 그 사소한 말들까지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복합적인 이유로 괜찮은척 버텨왔던 제 정신은 고2 때 터져서 품고 있던 조울증 따위가 심해졌고 앞서 서술한 증상들이 나타나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제가 괜찮은 건 아마 이런 얘기를 인터넷으로라도 꺼낼 수 있는 게 얼마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어른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거에요. 그분들이 해주신 위로를 받았고 그분들의 충고로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어요.
요즘 외도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집을 보니(외동입니다..ㅎㅎㅎ;) 이번 년도에도 분명 제가 슬플 일이 생기겠지만 그걸 견뎌내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사실은 의지가 안 생기는 것도 있어요. 지금도 이러고 있잖아요ㅎㅎ 아이구 한심. 그래도 부모님과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할 대학에 가서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드리고 싶은데..ㅠㅠ 마음 꼬옥 잡고 15시간씩 공부하는 고3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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