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저는 미술 전공의 고등학생이에요. 전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이 학교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칭찬은 저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분명 처음에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점점 사람들을 의식하게 돼요. 관심을 받는 것도 처음에는 좋았고 더 받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잘 하게 되는데 그럼 그때부터 불안해져요. 나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을 보면 자책하고, 마음에 안 드는 나를 보면 죽고 싶어요. (사실 죽을 용기는 없어요. 그냥 내가 사라져서 모든 상황에서 회피하고 싶어요.) 난 잘 하는 것 그거 딱 하나빼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멍청이인데 그것마저 가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나쳐 보이지만 사실이에요. 그리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망칠까봐 아니면 하던 도중에 망치면 금방이라도 찢고 싶어요. 남들이 날 잘 하다가 오늘은 왜 저러지? 하고 보는 게 끔찍해요. 날 띄워줘도 다 거짓말에 그냥 내 기분 달래려는 위로일 뿐이라고 느껴져요. 그리고 나면 내가 사기꾼같아요. 다른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가도 캔버스나 백지를 보거나, 이젤 앞에 앉으면 기분이 끝도 없이 ***요. 방과후수업 때문에 그림을 그려야 하면 어떻게든 집에 갈 방법을 궁리하거나 앉아서 멍만 때리고 있어요. 아니면 화장실을 전전하면서 소리죽여 울어요. 그리고 집에 오면 내가 너무 한심해서 계속 울어요. 뭐가 슬픈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전같지 않다는 점과 내가 무쓸모하게 느껴지는 점이 서러운 것 같아요. 얼마 동안이라도 쉬면 좀 나아질지, 하지만 전 쉴 수 있는 때가 아니에요. 학기 말에 전시는 세개나 남아있고, 전 단 한개도 완성하지 못했고 중간에 빠지면 기록에도 안 남아서 대학가기 불리해요. 미술하기 싫다면서 대학걱정은 하는 것도 좀 웃기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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