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원래 수능이었던 날 하루 전에, 그니까 15일에 모의고사를 풀었다.
국어 96, 수학 96, 영어 87, 한국사 43, 탐구 둘다 만점에 아랍어 21.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 다음날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순간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 본 모의고사 네 시간 붙잡고 겨우겨우 푼 국어 83, 수학 88, 영어는 풀다 던짐, 나머지 과목 손도 못댐.
처음엔 실감이 안났고 그냥 막 웃었다. 부모님이 괜찮냐고 물으실만큼 쳐웃었다.
그리고 수능 3일 전인 오늘에서야 눈물이 났다.
정부가 미웠다. 수능을 연기할거면 하루 이틀 미뤄서 포항애들 고사장만 바꿔주던가, 아니면 아예 한달을 미뤄서 고사장 수리를 완벽히 끝내고 여진 다 지나갈때까지 기다리던가.
그 다음으로 잘됐다며 기뻐하는 수험생들이 미웠다. 너네는 공부를 제 시간 안에 못 끝낸거고 난 시간 맞춰서 완벽히 준비했는데 왜 내가 피해를 봐야 돼?
그리고 사람들이 미워졌다. 흔쾌히 이해해주셔서 고맙다는데 전혀 흔쾌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너무 거슬려서, 정부를 정말로 미워하게 됐다. 골수 진보에 문빠였는데, 내가 그렇게 경애하던 그분에게도 화가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월호 의식한 보여주기식 대처였으니까. 나는 흔쾌히 이해하고 수긍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가 없으니까, 내가 어떻든간에 수능은 일주일 남았으니까, 내가 목소리를 내면 이기적인 악마***로 볼거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거였다. 뉴스기사 댓글들은 수험생, 학부모도 아닌 주제에 다 잘 미뤘다며 칭찬 일색. 다 죽이고싶었다.
마지막으로 난 인간성을 버렸다. 그래, 포항 애들이 미워졌다. 너네 힘든거 다 알아. 그 스트레스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인거 알아. 근데 왜 우리가 너넬 미워할 자격이 없다는걸 너네 입으로 들어야 해? 난 아무 소리도 안했는데? 내가 본 포항 학생의 그 글은 자신은 절대적인 피해자이며 지들처럼 지진피해 입은것도 아닌데 일주일 미뤄진걸로 멘탈 놓치는 너네가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니까 아무 말이나 다 해도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결국 난 인간으로써의 선을 넘어 걔네까지 미워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감정조절이 되지가 않아서 펜을 집어던지려다 독서실 친구들에게 피해줄까봐 휴지 한장 뭉쳐서 집어던지고 살금살금 걸어나와 화장실에서도 소리 시끄러울까봐 조용히 눈물만 흘리다 폰을 집어 이 글을 썼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지구멸망이든 전쟁이든. 그래서 수능 연기뿐만 아니라 내 존재랑 수능이라는 그 시험 자체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왜 재수를 선택한걸까.
이 상태로는 현역때보다 잘 보고 못보고가 아니라 수능을 칠때까지 살아서 버틸 수 있을까가 의문이다.
나는 분명 서울대를 바라봤고, 가능하다고 충분히 생각해왔었다.
근데
지금의 나는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