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보다 세살 어린, 처음엔 그냥 같이 노는 동생이었어요. 부모님들끼리 친한 사이여서 걔가 어릴때 제가 돌봐준적도 있었거든요. 너무 어릴때라 걔도 저도 기억 안나는 시절이지만.. 저희 가족이 이사를 가게되서 몇년 안보다가 2년전 다시 만났어요. 저보다 키도 크고 매너도 생기고 엄청 다정해졌더라구요. 설렜지만 내색하지 않았어요.
아마 그 어떤 사람이 그 애를 보건 약간의 설렘은 느낄거라 생각해요. 여성에 대한 기본 매너,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장난,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취미로 농구도 하는, 뭐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동생으로만 생각 했던 애였기에 그 애가 이성으로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하고 스스로 이해가 가질 않아서 계속 회피했어요.
어쩌다 그렇게 됬는지 모르겠어요. 어느날 그 애가 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거에요.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만 하고 사귀자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어요.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저희 가족이 이사간 곳은 외국이고 그 애는 한국에 사니까요. 아주 잠시, 약 두달간 그 애가 어학연수로 저희집에서 지내게 됬을때 일어난 일이었어요. 저도 알고있었어요. 제가 그애를 좋아하고 그애도 절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았어요. 사는 곳이 너무나 다르고 갑자기 불 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스스로도 안된다는걸 잘 알았어요.
사실 알면서도 그 애가 절 좋아해주길 간절히 바랬어요. 매일밤 그 애에게 잘자라고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가며 날 사랑하게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거라고 빌었으니까요.
제가 먼저 사귀자고 말했어요. 억지로 그어두었던 선을 제가 넘은거에요. 그 뒤 며칠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제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평생 그때만 반복하며 살고 싶을 만큼.
그 애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부모님 의 일 때문에 억지로 오게된 외국에서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어요. 그 애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목표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그 애가 돌아간지 몇주가 지났을까요. 전화가 걸려왔어요. 흔들린다고 말했어요. 내가 사랑스러워서 날 사랑한다 말했던 그 목소리로 흔들린다고, 한국 지금 와줄수 없냐고.
전 화를 냈어요. 가장 가고 싶은건 전데. 그래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흔들린다니. 그 후로 연락이 조금씩 끊겼어요. 그러던 어느날 침묵을 참지 못하고 제가 말했어요. 너가 이렇게 연락도 잘안하고 흔들린다고 하는게 나한테 너무 힘들다고. 나도 노력할테니까 너도 그래주면 안되겠냐고.
대답은 제가 기대했던 말이 아니었어요. 통화를 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메세지로 짧게
나한테 더이상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라는 말 한마디 뿐이었어요.
짧게 붙었던 불씨였으니까 금방 괜찮아 질줄 알았어요.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차마 삭제하지 못하고 그자리에 앉아 하루를 꼬박 울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도 쉬기 힘들었어요. 매일밤 울고 다시 울고. 몇달동안 울었어요.
이렇게 오래 아픈건 처음이었어요. 친한 동생이 이러다 정말 언니 죽을것 같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했어요. 마침 몇번 연락하던 한살 어린 동생이 제게 고백했어요. 이렇게 보니 웃기네요. 어릴때 이상형은 연상이었는데. 제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가봐요.
그래서 사겼어요. 처음엔 그저 슬플때 남자친구가 있으면 슬픈 내색하지 않아야하니까 힘들고 피곤했는데. 내가 첫연애라며 무척 좋아하고 서투르게 절 챙기려는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정말 이사람을 사랑하게 된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몸도, 마음도 다 줄수 있다고.
몇주전 한국에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어릴때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님의 친구분들과 저녁약속이 잡혀서 가족단위로 모이게됬어요. 그 애가 왔어요.
시간이 그제야 흐르기 시작한 것 같다는 기분이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 하는 그 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아 이대로 그냥 내가 아무렇지 않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외국에 돌아가면 평생 이 애를 잊을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애증이었을지도 몰라요. 비록 애가 훨씬더 큰 마음이었지만. 남자친구의 연락에 답하는 것이 점점 뜸해졌어요. 서운함을 표하는 남자친구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도 못했어요. 새카맣게 타버린 마음이 너무 아파서 다시금 잿더미에 불길이 올라서.
제게 다시 흔들리는 그 애가 느껴지는 듯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나봐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명확해졌어요. 그애가 날 이미 잊은지 오래고, 날 예전 처럼 누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요. 내가 소중하다고 말했어요. 누나로써.
그 말에 화가 나 약간 쏘아붙였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건 못믿겠다. 너가 왜 날 소중하다 생각해 라며.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어요. 그애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어요. 애증따위. 있을 수가 없잖아요.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아프더라도 그애가 상처받는 건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애에게 날 싫어한다고 말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직접 들어야 내가 확신할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애를 사랑하는 나를 죽이고 싶어서. 내가 아파도 상관없으니까. 그 애가 원하는 대로 누나로써 남고 싶어서.
처음엔 왜 그런 말을 해달라며 화를 내던 그 애가 나지막히 싫다고 말했어요. 마음이 갈갈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자리에서 울것 같았지만 참았어요. 뒤돌아 자리를 벗어나는데 그 애가
이건 누나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해서 말한거야. 난 누나가 좋다고. 좀 믿으란 말이야.
라고 말했어요.
나도 알고 있었어요 너무 잘. 그 애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게 나와 같은 사랑은 아니라는 것도. 어차피 이미 난 남자친구도 있고 원래는 이런 마음 자체가 죄라는거. 이미 내가 너무 먼길을 돌아왔다는거. 늦을대로 늦어 끊어지다 못해 영영 사라진 연을 이을 수 있을리가 없었어요.
제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모두 아마 제가 한국에 살았다면 계속 그 애와 사겼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애는 완벽하게 제 이상형이었고 그애에게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그저 가볍게 운명같다고 생각한게 아니었어요. 그 애는 감추는 걸 잘하니까. 어쩌면 저에게 흔들렸을 수도 있죠. 전과 마찬가지로 다정했고 끊임없이 나보고 예쁘다, 소중하다 말했으니까요.
물론 그건 외국에서 힘든 생활을 하며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절 격려하는 말일 테지만요.
어쩌면 전 평생 그애를 잊지 못할 것같아요. 2년 내내 단한 순간도 그애를 완전히 잊은 적이 없어요. 여전히 전 그애 사진을 지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것같으니까요. 지금 다시 그 애에게 톡이 왔어요. 잘지내냐고 묻네요. 다시 웃으며 대답하러 가야겠어요. 남자친구와는.. 내가 미안해서 곧 헤어져야할 것같아요.
조언을 듣고 싶기도 하고 위로를 받고 싶기도하고 따끔하게 한마디 듣고 싶기도해요. 그냥 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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