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고백 내 자신
아주 길어요. 진심을 다한 고백이거든요.
저는 대학교 1학년까지 제 얼굴이 끔찍이도 싫었어요. 못생겼으니까요. 여드름 투성이에 두꺼운 안경, 거기다 센스없는 옷차림까지. 대화를 할 때도 얼굴 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이성과 대화할 땐 더욱.
그러다 여드름이 가라앉고, 화장품이 제게 새로운 삶을 줬어요. 그건 삶이었어요. 내가 처음으로 예뻐보였으니까요. 처음으로 찍은 셀카가 아직도 기억나요. 아이라이너를 서투르게 바르고 웃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좋았어요.
그 뒤로 ***듯이 정보를 찾***녔어요. 눈 커 보이는 메이크 업, 피부 매끈해 보이는 방법, 코 오똑해 보이는 법.
한번 불을 당기니 끝이 없었어요. 더, 더 예뻐보이고 싶어서 다이어트도 *** 듯이 하고, 옷도 트렌드 찾아서 사 입고. 방학동안 모든 걸 바꾸고 새학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거든요.
그렇게 2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저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받았어요. 모든 과 사람들이 저를 다시 봤거든요. 저는 과에 애착이 없어서 한 두 사람 빼고 친분이 없었음에도, 그런 제 귀까지 내가 예쁘다는 소문이 들려왔어요. 연예인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와…..됐다, 이젠 됐어. 라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예뻐지니 사람들 사이를 당당히 걸을 수 있었어요. 땅이 아니라 정면을 보고 걷는 날이 와서 너무 행복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다가와줘서, 남자들이 웃으면서 다가와줘서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점점 화장한 얼굴의 혜택을 맛볼수록 맨 얼굴이 더욱 싫어지는 거예요. 더 끔찍하게 보였어요. 여드름으로 늘어진 피부와, 커진 모공, 짙은 다크써클. 거기다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드는 안경까지. 저는 더 철저하게 감췄어요.
그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룸메들과 방을 같이 쓰는 일이 최악의 스트레스였어요. 내 맨 얼굴이 알고 있다는 건 내 최고의 약점을 알고 있는 거였거든요. 내가 없을 때 얘네들이 내 얼굴 얘기를 하며 웃을까 불안하기까지 했어요
룸메친구가 우연히 제 맨얼굴과 제 화장한 얼굴을 보고 같은 사람 맞냐고 룸메에게 묻는 걸 듣고 수치스러울 정도였어요.
남자는 더욱 못만났어요. 이 사람이 내 진짜 얼굴을 보면 도망가겠지. 나도 내 얼굴 싫은데 이 사람은 어떡하겠어. 하는 체념만 커져갔어요.
시간이 지날 수록,화장이 능숙해질수록 화장 없이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겠는 거예요. 아니, 이젠 화장을 해도 불안했어요. 피부가 뜨진 않았는지, 눈꼬리가 이상하진 않은지, 기름은 안 떴는지 수시로 거울을 봤어요.
어느 날은 화장이 제대로 안 먹어서 얼굴이 못생겨보이는 거예요. 그런 날은 종일 우울하고 얼굴 들기가 싫었어요.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 거예요.
당연한 거였죠. 화장한 얼굴이 익숙해지니 제 낮은 자존감이 또 저를 좀먹어 갔어요. 한 꺼풀 덮는다고 내면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전 여전히 못난 사람이었어요.
오히려 더 안 좋아졌죠.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요. 나도 미쳐 모르는 내 못생긴 부분을 알아챌 것만 같았어요.
전혀 모르는 타인의 눈이 ***듯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어요.
화장한 얼굴로는 편하게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제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적인 나를 연기하고 싶어했던거 같아요. 항상 당당하고, 할 말 다하고,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쿨하고, 예쁜 나.
그러니 소심하고, 부끄럼 많고, 쉽게 싫증내고, 짜증내는 진짜 나는 맨 얼굴과 함께 깊이 감춰두었어요. 그리고 집에 오면 천근만근이었어요.
사람들과 깊이 친해질 수도 없었어요. 이 사람들에게 맨 얼굴 보여줄 수 있니? 자문해보면 절대 안돼, 가족이랑 친구 누구랑 누구 빼고는 절대 안돼.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이제는 화장한 얼굴도 못나서 자주 모자를 쓰는 횟수가 늘어가다 결국, 이제야 터진 거예요.
공황장애가 온 거죠.
처음 공황장애가 온 다음 날부터 추석연휴 내내 열이 나면서 지독하게 아팠어요. 핏기도 사라지고 살도 쭉쭉 빠졌어요.
처음 증상이 발생한 날 밤에, 저는 진심으로 제가 죽는 줄 알았어요. 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대로 끝인 것만 같았죠.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서 초등학생 이후로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자도 되냐고 부탁할 정도였어요.
그 뒤로 입맛은 사라지고, 피곤하고, 내가 미쳐가나 두려웠어요.
알바를 하고 있을 땐 괜찮아서, 아 이젠 괜찮나보다 싶어 주말에 강남이나 종로를 나가니 증상이 재발하더라구요.
(알바는 학원알바라 아이들만 다뤄서 괜찮나봐요)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오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오금이 저려오는데 숨도 못 쉬겠고, 왠걸 울음도 터질 것 같은 거예요.
결국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울어버렸어요. 난 이제 큰일났다, 지하철도 못 타면 사회생활은 끝났다 싶었던거죠.
그리고 한달 뒤인 지금, 전 렌즈를 거의 안써요. 오늘 오랜만에 쓰고 싶어서 써봤어요. 근데 여전히 불편하네요. 전에는 눈에 다래끼가 나던, 염증이 나던 꼭 껴야했거든요. 안구건조증은 늘 있어서 안약은 필수였는데 지금은 안약이 어디있는지도 까먹었어요ㅎㅎ
화장품은 확 줄어서 1시간 했던 화장을 지금은 5분에서 10분이면 다 끝나요. 잡티나 여드름 그대로 보이고 다녀요, 옷도 편한 후드티 입고, 구두는 전혀 안 신고요, 운동화를 조금 더 샀어요.
공황장애는 여전히 있어서, 몸은 금방 피로해지고, 사람 많은 데 갔다오면 몽롱하고 심장도 빨리 뛰고 이상한 무섬증도 진정시켜야 돼요. 일단 밖에 나가려면 각오를 해야해요. 저혈압도 와서 몸이 좋진 않아요.
근데 저는 이게 고마웠어요. 이렇게라도 제동을 걸지 않았으면 내 속에선 나와의 괴리가 심해졌을 거예요.
공황이 오고나서야 나에 대한 검열이 최고치를 찍었다고 느껴졌어요. 타인의 무심한 시선에도 죽을 것 같았거든요.
추석연휴가 지난 후, 알바를 가야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화장을 최소한으로 줄였어요. 그 전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요. 화장을 지워도 맨 얼굴과 큰 차이가 없을만큼만 했어요.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봤어요.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뛰는 일이었어요. 거의 맨 얼굴로 모자도 쓰지 않고, 고개를 드는 건 저한텐 힘든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관심했어요. 저를 본 체 만 체 했어요.
학원에서도 아이들은 저를 화장했던 안 했던 똑같이 대했어요. 며칠을 그렇게 지내는데, 제가 훨씬,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웠어요. 여전히 타인의 눈에 비칠 나를 걱정하는 습관은 남아있지만,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어요.
그동안 꾸며낸 이미지와 내 화장한 얼굴이 이상하게 비칠까봐 무섭고 또 무서웠는데 차라리 나로 돌***니까 주변과 타인의 시선에 별 신경이 안 쓰였어요.
맨 얼굴을 드러내니 내성적이고, 말 수 적고, 웃음기 적은 그 모습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신기한 건 이젠 거울을 봐도 아무 느낌이 안 나요. 화장을 ***듯이 했을 땐, 화장을 해도 어디가 어떻고, 저기가 어떻고 내 못생긴 부분을 찾아서 품평하고 우울해 했었어요. 그러다가 이럼 안된다고 굳이 예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지금은 그냥 내 얼굴이에요. 나의 얼굴.
그 사실을 깨닫고 나를, 진짜 내 얼굴을 보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알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지겹고도 힘든 사투가 공황장애가 찾아오고나서야 끝이 보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고도 신기해요.
엄마는 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답답해만 하시고, 직접적으로 난 너 이해 안간다 해서 눈물 짓는 일도 많았거든요.
나중에 제가 머리도 막히고, 뒷목도 뻣뻣하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엄마는 고혈압을 고혈압인지도 모르시다가, 몇 년동안 몸이 너무 이상해서 혼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하시는 거예요. 저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어요. 병원도 안 가고 혼자 참고만 있었다는 엄마의 말에 그제야 엄마가 보였어요. 아픈 티도 잘 안 내는 엄마였지만 죽음에 대한 무서움도 혼자 견디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거든요.
몸이 아프고나서야 내가 얼마나 나를 험하게 다뤘는지 알았어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어요.
그게 너무 감사하고 무신론자인데도 기도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체력이 많이 약해져서 주말에 한 시간씩 동네를 걸어다니려고 해요. 오늘 처음 하고 왔는데 지금도 두근거리고 몸이 이상하고 너무 피곤하지만, 괜찮아요.
정말로요.
가끔씩 꾸미고 싶은 마음에 화장에 렌즈까지 끼고 나갈 때도 있어요.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힘들지만, 도수없는 안경 끼니까 안정되더라구요. 안경도 예쁜 거 사서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 차근차근 방법을 알아가고 있고, 내가 꾸미고 싶을 때 꾸민다는 선택지가 생겼으니까요.
의미없이 밖에 돌***니지 않으니, 좋은 책과 영화에 몰입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구요. 벌써, 한 달동안 세 권의 책과 여러 영화를 봤어요.
마인드카페에 스스로의 얼굴과 몸매에 괴로워하시는 분이 많이 보였어요. 한 분은 저랑 비슷해서 장문의 댓글까지 썼었어요.
저도 제 맨 얼굴이 못나보일 때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요.
나를 미래의 내 아이처럼 나를 키우겠다고요. 아이를 낳을지 모르지만 저는 미래의 제 아이가 자기는 못생겼다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아이가 어떤 얼굴이든 전 그 아이를 사랑할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나를 그런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는데 내 아이를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요?
내 미래의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을 지금 나에게 줄 거예요.그러고 싶어요
내 아이가 힘들 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줄 거예요. 내 아이가 기쁠 때 내가 함께 기뻐할 거예요.
그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주고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주고, 무서운 일이 있으면 꼭 끌어앉아 주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라고 어깨를 두드려 줄 거예요.
길고 긴 고백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인드카페 같은 앱이 없었다면 이런 글 쓸 수도 없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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