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릴 때부터 잘못하면 맞았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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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Sodamnim
·7년 전
*** ~ *** 어릴 때부터 잘못하면 맞았다. 맞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나이에 나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나고 맞은 뒤 좁은 방안에 가둬졌다. 무서웠다.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잘못하면 혼나고 맞은 뒤 방안에 갇히는 건 일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빠는 나를 때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나면 좋았을텐데 , 시작에 불과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유난히 성격이 불같았던 나는 엄마와 자주 부딫혔고 엄마는 나를 향해 폭언을 일삼았다. 어떤 폭언을 했는지는 기억이나질 않는다. 그저 엄마의 화난 얼굴과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만 기억날 뿐. 폭언을 들으면서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기 시작했고 눈치를 보게 됬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예쁨이 받고 싶어 나를 밝고 해맑은 아이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나는 내 자신에게 넌 밝아야하고 귀여워야하고 사랑스러워야하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여야해라고 주입을 ***기 시작했으며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나는 누구보다 밝은 아이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 날이 가면갈수록 부모님과 격하게 부딫히기 시작했고 엄마는 나를 때리려 매를 들었지만 난 그 매를 붙잡고 맞지 않으려했다. 또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부모님께 대들면 집에서 쫓겨났었다. 두시간도 채 못기다리고 나를 찾으러 오긴 했지만 말이다.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내가 왜 이런 집안에서 살아야하나 싶었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스스로 내 목을 졸랐고 목을 매달아도 봤으며 물건이라도 던지면 기분이 풀릴까 싶어 책상에 있는 물건을 모두 집어 던지기도 했으며 새벽에 몰래 나가 차에 치이려고 한 적도 있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여름 , 학교에서 진행한 우울증 검사에서 우울증 위험군이 나왔다. 엄마한테 말했다. 한 두시간은 잠시 나를 걱정해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엄마랑 싸웠고 엄마는 내 기억속에서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말을 가볍게 소비했다. "니가 그러니까 우울증 위험군인거야" 머리가 띵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건가 싶었다. 난 방으로 들어가 숨죽이며 울었고 결심했다. 꼭 이 집에서 나와살겠다고. 그리고 내 상처의 정상을 건들인 것은 아빠였다. 추운겨울 친척들이 다 우리집에 와있는 상황에서 엄마와 싸웠다. 아빠는 당연하게도 이유없이 엄마편을 들어주며 나에게 니가 다 잘못했다는 듯이 말했고 억울했던 나는 손에 들고있단 핸드폰을 던진 뒤 내 방으로 들어왔다. ***듯이 울었다, 울다가 목이막혀 숨을 쉬지 못해 ***듯이 내 가슴을 두드렸고 결국 방바닥에 토를하고 말았다. 토를하고 난 뒤 얼마있지 않아 아빠가 들어왔다. 나를 보고 내가 토한 것을 보며 아빠는 매정하게도 말했다. "니가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토한 거나 치워"라고 말이다. 그 순간 억누르고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면서 커터칼을 찾아 ***듯이 팔을 긋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12개의 작고 큰 상처에서 빨간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별로 치료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가리며 침대에 누워 울다가 지쳐 잠이들었고 내흉터는 아무도 알지 못한채 넘어갔다. 이후 난 바뀌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 나를 2순위로 제쳐두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찬성을 하려했고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애가 벌써부터 철이들어서 너무 착하고 예쁘네~" 라고말이다.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다. 중학교 3학년 1월 , 작년에 그려둔 흉터를 결국 엄마한테 걸리고 말았다. 난 울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에대한 걱정보다는 내 팔의 흉터에 대한 걱정을 했다. 피부과 가서 얼른 지우자는 말만 할 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잠깐이였다. 3월 ,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졌다. 이유는 나와 5년을 알았던 친구가 주도해 나를 왕따시켰기 때문이다. 매 수업시간마다 잠을 자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고 그저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다고 나를 타박하시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내가 너무 수업시간에만 잔다고 집에서 잠을 *** 않냐고 뭐라고 하셨다. 물론 엄마는 나에게 와서 잔소리를 했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였던 것은 한명은 나에게 남아줬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무리에서 같이 생활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자주 밥을 같이 먹지는 못하였지만 나름 나를 챙겨줬던 고마운 친구다. 힘들었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난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은 무사히 보냈지만 2학년으로 올라와서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녀 합반이 되었고 난 평소와 같이 다른 친구들하고 친해지려 했었으나 한명이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고 나는 결국 무리에서 겉도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3학년으로 진학했고 결국 또다시 일은 터졌다. 1학기 중간부터 무리에서 매우 겉돌게 되었고 결국 또 한 친구의 주도하에 나는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힘들었다. 또 다시 도망칠 길을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친구란 없었다. 집도 학교도 싫어졌다. 일부러 알바를 늦게 끝내고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밖에서 ***듯이 돌***녔다. 그리고 3학년2학기 나는 직업전문학교로 도망쳤다. 이 학교에서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은 있지만 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요즘따라 더 우울해지고 있다. 살고싶다.죽고싶다. 중간에서 마음이 ***듯이 움직인다. 난 오늘 정신과에 가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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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damnim (글쓴이)
· 7년 전
현재 12개였던 흉터는 8개밖에 남지 않았다. 조그마한 흉터들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교 3학년쯤에 한번 친구가 트라우마를 크게 건들여 커터칼로 ***듯이 그었던 적이 있으나 그건 그 날 엄마한테 걸려서 치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