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퇴사에 죄책감이 드는걸까요? 이십대 중반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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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poempiano
·6년 전
왜 내 퇴사에 죄책감이 드는걸까요? 이십대 중반 직장인입니다. 대학졸업전 급하게 취직해 3년차네요. 퇴사 결심했습니다. 일상이 버틸수 없이 무료해서요. 일은 힘들고 상사들은 제일 어린 제게 일을 떠밀고 화풀이 하네요. 감내 해야하는 막말도 힘들었구요. 그만두자 마음 먹었습니다. 매일밤 맥주한잔으로 화를 달래요.. 그런데 퇴사를 앞두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듭니다. 아무도 제게.. 뭐라할 자격도 권한도 없는데요. 제가 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만두면 너희집 생계는..? 네가 애야? 당장 뭐먹고 살건데?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을 때야? 귀를 막고 싶습니다..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네 살 터울 언니가 있어요. 학창시절부터 언니와 비교를 많이 당했어요. 언니는 밝고 공부도 잘했고 저는 그 반대. 말이 없고 공부보단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실상 가족이나 친척들은 제게 별 관심이 없었으니 차별당했다..곤 말할수 없어요. 하지만 저도 마음이 슬퍼지니 사소한 섭섭함이 하나둘씩 떠오르네요. 학교와 이십분 거리인 나는 걸어가는데 십분거리인 언니는 늘 엄마가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던일.. (언닌 저보다 공부량도 많고 몸이 약하다면서요) 언니만 보약을 해주고 도시락을 싸다준 일 언니만 과외를 시켜준일.. 네, 저는 언니보다 공부를 못했기에.. 언니가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니는 명문대에 갔어요. 저도 기뻤습니다. 언니는 저의 자부심이기도 했어요. 언니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저흰 사이좋은 자매였어요. 저는 그림 특기자로 다행히 서울권대학에 갔어요. 가족들은 큰 기대 없던 제가 알아서 대학에 지원해 갔구나, 하는 반응이었죠. 무슨 전공인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아무도 물어주진 않았으나 저는 제가 기특했어요. 대학생이 된 언니는 자취를 한다고 부모님이 다달히 많은 돈은 부쳐주셨고 학점관리로 계절학기까지 듣는다 하여 추가로 수업료를 내야했어요. 집안형편을 알기에 저는 왕복 네시간 거리를 2년간 통학하다가 시에서 지원해주는 저렴한 기숙사로 갔어요. 전액장학금 받으며 등록금도 내지 않아도 됐구요. 틈틈히 아르바이트 해서 부모님 드렸어요. 저를 기특해 하셨죠. 그런데..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요? 돈을 해줘야 하는 자식.. 돈을 벌어다 주는 자식.. 신경써서 챙겨줘야하는 자식..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관심꺼도 되는 자식.. 부모님들 마음에 이렇게 언니와 제가 나뉘고 있던것은 아닌지.. 고학년이 되자마자 취업걱정을 했어요. 실은 관심있는 나라에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고 조금 더 이십대를 즐기고 싶었는데 돈을 빨리 벌어 집에 보탬이 되고 싶었거든요. 언니 때문이었습니다. 청년실업 때문에 언니도 지원한 회사에 모두 떨어졌습니다.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졸업을 유예하고 공부를 하다가 1년간 어학연수를 간다고 훌쩍 떠났습니다. 당연히 그 비용은 부모님이 대시구요. 그 상황에서 저도 어디를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디자인계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고 박봉과 야근을 견디며 견뎠습니다. 사회생활 초년생이 으레 다 그렇겠지만 유난히도 혹독하고 매웠습니다. 그래도 제 돈으로 제가 집세를 내고 생활비를 대고 부모님 용돈도 드릴수 있다는 희열감이 들었어요. 마침 언니도 해외에서 취업했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 모든것이 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년만에 언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구요. 그리고 거의 5개월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더군요. 거짓없이 제가 본 것 그대로 말합니다 언니는 돌아와서 놀았습니다. 제가 출근하면 두시쯤 일어나 밥먹고 티비보고 다시 자면 저녁.. 저와 저녁을 먹고 자기 말로는 새벽에 공부하고 일자리도 알아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가족에게 하는 말이 취업을 위해 3개월간 다시 학원에 다니겠다고 하네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퇴사하고 한달이라도 쉬고 싶다고 얘기하기가 다시 또 죄책감이 듭니다. 엄마는 항상말로는 우리 **이가 제일 고생했지 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 제가 그만두기를 바라지 않는 눈치입니다. 생활비와 집세가 고민되는 형편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싶어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제게 제가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자책감이 듭니다. 길고 두서없는 엉터리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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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lu
· 6년 전
고생했어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부모님 부양...요즘 젊은이 벌이로는 쉽지 않죠. 괜찮아요. 죄책감 안 느끼셔도 돼요. 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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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0000
· 6년 전
그동안 고생 많으셨네요. 저는 사실 그래요. 요즘엔 자식들도 본인 먹고살기 바쁩니다.. 마카님처럼 책임감을 느껴 그렇게까지 하는사람 드물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마카님이 집안을 다 보살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전 솔직히 그건 부모님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마카님은 거기에 묶여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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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ong
· 6년 전
힘드셨겠어요.. 이제 가족 생각은 떨치시고 자신을 생각해보셨으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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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d
· 6년 전
알바하면 돈드리고 생활비까지 드리다니...이제는 그돈을 모아서 전세를 구해보세요. 언니분 어학연수 돈도 대줄 수 있으면 사실상 글쓴분이 생활비를 드릴 필요가 없어요...그런데 글쓴분이 계속 드리니 부모님은 당연하게 생각하실 거에요 언니도 그렇고요...그리고 아무도 글쓴분에게 고맙단 생각을 안할거에요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실 필요도 없어요 오로지 본인만을 위해서 노력하세요. 세상에 없는게 더 나은 가족이란게 진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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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
· 6년 전
공감이 많이되서 지나칠수가 없네요. 누구는 울면서 내 고통을 돈으로 바꾸며 가족을 위해 일하는데 누군가는 내 눈앞에서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네요. 마카님 저도 하루 하루 버텼어요. 하루 하루가 십년이 되니 조금 나아지네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이되면 죽는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조금 바뀌었네요. 내 책임감을, 내 성실함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을 목도하는건 정말 힘들고 고단한 일이예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니 그 고통이 지금 사라지지 않았다할지라도 내 발판이 된것들도 있어요. 내 또래, 내 가족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나만의 강함이 생기게되요. 주위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생각을 하고 내 책임감을 죄책감으로 바꿔놓은 마음을 하나씩 천천히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그러다보면 더 나은 하루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이 힘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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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piano (글쓴이)
· 6년 전
댓글 하나하나 읽고 또 읽으며 퇴근길에 몰래 울었네요. 다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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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
· 6년 전
시간이 지나니 너가 책임감이 강해서 그래 힘들었겠다가 아니라, 그러게 왜 그랬어? 니 잘못이지 솔직히. 가족이라고 너가 다 해줘야되는거 아니야. 이런말을 듣게되는데요. 정작 나는 그 가족안에서 구속된거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어쩔땐 죄책감마저 들고 그게 제일 저를 힘들게했어요. 누구한테도 털어놓을수도 없고요. 기회가 된다면 진짜 잘했다, 너 아니면 못했다, 너 진짜 대단하다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요. 마카님들도 다 그렇게 말해줄거예요 ㅎㅎ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돌봐주고 내 마음 아파도, 남들은 티가 안날정도라고 해도 가끔은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모른척해주세요. 제가 경험한거는, 어쩔 수 없으면 사람은 바뀌긴 한다는 거예요. 남들은 모르는 그 작은 변화를 가족은 귀신같이 알고 욕할수있어요. 눈 딱감고 모른척하세요. 그렇게 작은 것으로 시작하면 더 큰 것으로 바뀌어도 처음보다는 반발이 약해질거예요. 그렇게 갈라진 틈이 어느정도 생기면 숨 쉴 공간도 생기고, 가족도 혼자 힘으로 조금이라도 강제적으로라도 하게 될거예요. 가장 힘든건 가족한테 욕먹는게 아니라 문득문득 드는 더 잘해줄걸하는 미안한 마음일거예요. 한번쯤 눈 꽉 감아보고 외면하고, 칭찬이 필요하면 언제든 여기로 와서 재충전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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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piano (글쓴이)
· 6년 전
@hanj 감사합니다. 맘이 약해졌는지 자꾸 눈물이 나와서 공원에 나와 찬찬히 읽고 또 읽었어요. 제가 저의 딸이었다면 힘들면 쉬어라.. 짐은 잠시 내려놓고.. 이렇게 위로해주었을것 같아요 모두들 정말 감사드려요..가까이 있는 가족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마카분들의 한말씀이 더 와닿고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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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w
· 6년 전
그 동안 고생했어요. 부모님과 언니 가족들을 위해서요. 이제는 다른누군가를 위해 하는 고생이 아닌 마카님을 위해서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시고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